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 붙들고 살았는데, 정작 빠르게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이먼 사이넥의 골든 서클 이론처럼 '왜-어떻게-무엇을'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개인적 탁월함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었습니다. 바로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입니다.
사고전환: "어떻게"에서 "누구와"로
저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막히면 유튜브를 뒤지고, 책을 찾고, 직접 해결책을 익혀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정작 일이 술술 풀렸던 순간들은 전부 달랐습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을 먼저 찾아가 설득하고, 그 사람이 문을 열어줬을 때였습니다.
'어떻게'를 묻는 순간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반면 '누구와'를 먼저 묻는 순간, 다른 사람의 시간과 전문성이 투입됩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혼자 3개월 걸릴 일이 적임자 한 명과의 협력으로 2주 만에 끝나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저는 그 차이를 몸으로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고방식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디시전 피로(Decision Fatigue)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디시전 피로란 하루 동안 수많은 결정을 내리다 보면 판단력과 의지력이 점점 소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에너지가 바닥나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잡다한 실무를 다 붙들고 있으면 하루가 끝날 때쯤 정말 중요한 결정 앞에서 멍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관점
"사람을 쓰면 돈이 나가잖아요." 이 말이 마음속에 있으면 위임은 영원히 시작되지 않습니다. 저도 한동안 이 벽 앞에 서 있었습니다.
위임(Delegation)이란 자신의 업무나 권한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 하는 관리 행위입니다. 단순히 일을 떠넘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핵심은 비전과 목표, 마감 기한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냥 알아서 해줘"라고 했을 때 결과가 가장 나빴다는 건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저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명확한 지시 없이는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제 기대를 맞추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NASA 청소부에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 청소부는 "저는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협력자가 자신의 역할을 큰 그림 안에서 이해할 때, 전문성이 최대치로 발휘됩니다. 목표 전달이 왜 중요한지를 이 한 가지 사례가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미루기를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을 참여시킬 신호일 수 있습니다. 미루기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지식이나 역량이 부족할 때 자신을 보호하는 무의식적 반응일 때가 많습니다. 그 미루고 있는 일 목록을 한번 꺼내보세요. 그중 몇 가지는 적임자에게 맡기면 오늘 당장 해결될 수 있습니다.
위임할 때 확인해야 할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비전: 이 일이 전체 목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것
- 목표: 결과물의 기준과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 마감 기한: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받을지 명확히 할 것
- 자율성: 전달 이후에는 세세한 방식에 관여하지 말 것
협업: 관계의 질이 성과의 질을 결정한다
일을 잘 위임하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일할 필요가 줄어든다는 겁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누가 나와 맞고 누가 맞지 않는지 훨씬 예리하게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그렇습니다. 여유가 없을 때는 눈앞에 있는 사람과 어떻게든 맞춰가야 했는데, 여유가 생기니까 관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협업에서 중요한 건 신뢰 구축입니다. 협업 파트너에게 구체적이고 진심 어린 감사를 자주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성공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장기적인 협력 관계의 기반이 됩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습관적으로 던지는 사람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로버트 캐건(Robert Kegan) 박사는 인간의 자아 발달을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자아 발달(Self-Authorship)이란 외부의 기대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관과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능력의 성장을 말합니다. 캐건 박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인은 2단계, 즉 자기 주도적 단계에 머물며 독립을 중시하고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합니다(출처: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하지만 3단계인 변혁적 자아(Transforming Self)에 도달한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고, 협력을 통해 더 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 분류를 보면서 솔직히 "나는 아직 2단계에 가깝구나" 싶었습니다.
자기계발의 다음 단계: 혼자 잘하는 것에서 함께 크는 것으로
톨킨과 C.S. 루이스는 서로의 작업을 보여주며 비판하고 격려하는 인클링스(Inklings)라는 문학 모임에서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가 탄생했습니다. 지성과 지성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혼자 잘하는 것과 함께 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이먼 사이넥의 골든 서클 이론이 개인의 동기와 행동 방향을 정렬시켜 준다면, '누구와'의 관점은 그 개인의 역량을 훨씬 빠르고 크게 증폭시켜 줍니다. 제가 이 관점을 접하고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해결하지?"보다 "이걸 잘 해줄 사람이 누구지?"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는 점입니다.
ROI(투자 대비 수익률)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에 대한 투자는 장비나 소프트웨어 구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레버리지를 만들어냅니다. ROI란 투입한 비용 대비 얼마만큼의 이익이 발생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협력자가 가져오는 것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전문성과 인맥, 그리고 또 다른 네트워크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고성과 팀일수록 명확한 역할 분담과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출처: Google re:Work).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 내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어떻게'가 아닌 '누구와'로의 사고 전환은 거창한 결심이 아닙니다. 지금 미루고 있는 일 하나, 혼자 끙끙대고 있는 문제 하나부터 "이걸 잘 해줄 사람이 누구일까?"로 질문을 바꿔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그 작은 전환이 생각보다 훨씬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걸, 직접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나만 해보시길 권합니다.